1935년 민족문화 수호와 사회운동의 지속 — 식민 통제 속의 자율 공간
1935년 민족문화 수호와 사회운동의 지속 — 식민 통제 속의 자율 공간
1935년은 일제가 전면적인 식민 통치 체제를 완비한 가운데, 한국 사회가 문화·언론·교육 영역에서 민족성을 보존하고 사회운동의 불씨를 지켜낸 해였다. 조선어학회가 『조선어 사전』 편찬을 시작했고, 민속·역사·예술 연구를 통한 민족문화 수호 운동이 학계와 지식인 사이에서 활발히 이어졌다. 한편, 농민·노동·청년 단체들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경제적·사회적 권리를 주장했다.
이 시기는 무장투쟁의 주 무대가 만주·중국 본토로 이동한 후, 국내에서는 조직적 대중운동과 문화운동이 결합한 형태로 저항이 지속된 시기다. 식민권력이 모든 제도권 통로를 틀어쥐고 있었지만, 작은 틈새 속에서 자율과 연대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조선어학회와 민족 언어 보존
1935년 조선어학회는 체계적인 표준어 정리와 방대한 어휘 수집을 통해 『조선어 사전』 편찬 사업을 본격화했다. 이는 단순한 언어학 프로젝트가 아니라, 식민지 상황에서 정체성 보존의 문화운동이었다. 일본은 학교·관공서에서 일본어 사용을 강제하고, 조선어 과목 시수를 축소했지만, 지식인들은 사전 편찬을 통해 언어의 뿌리를 기록하고 미래 세대에 전하려 했다.
사전 편찬 과정에는 전국 각지의 교사·학생·지식인이 참여했다. 단어·방언 채록, 고문헌 자료 정리, 의미·용례 기록은 모두 자발적 네트워크를 통해 진행되었으며, 이는 곧 전국적인 문화 연대망을 형성했다.
"언어는 기억의 창고다. 사전을 만드는 일은 민족의 미래를 쓰는 일과 같다."
민속·역사·예술 연구의 확산
1930년대 중반은 민속·고고·역사 연구가 활발했던 시기다. 조선학운동을 전개한 정인보·안재홍 등은 ‘조선학’이라는 이름 아래, 조선의 전통과 자주성을 학문적으로 재조명했다. 『동국통감』, 『삼국사기』, 『고려사』 등의 재해석과 함께, 민화·전통음악·향토사 연구가 이어졌다.
이러한 연구는 식민사학에 맞서 자생적 역사관을 세우려는 시도였다. 비록 총독부 검열과 자료 접근 제한이 있었지만, 학자들은 강연·출판·학술지 등을 통해 지식을 퍼뜨렸다.
경제·사회 운동과 청년 조직
농촌에서는 1930년대 경제 불황과 소작료 부담, 수탈이 겹쳐 농민조합의 활동이 확대되었다. 비록 일제의 농민조합령에 따라 합법 조직이었지만, 실제로는 소작 쟁의·세금 저항·마을 자치와 같은 민중 주권 실험의 장이었다.
도시에서는 노동조합과 청년 단체가 결성·해산을 반복했다. 특히 학생운동은 ‘조선학생과학연구회’ 등 과학·문예 서클의 형태로 이어져, 검열을 피해 사상·정보를 교류했다.
"조직은 해산될 수 있어도, 관계망은 해체되지 않는다."
문화통치의 한계와 사회적 틈새
3·1운동 이후 일제가 내세운 ‘문화통치’는 표면적으로는 언론·집회·결사의 일부 자유를 허용했지만, 실제로는 광범위한 감시·검열 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런 제도적 모순은 오히려 합법과 불법, 제도와 비제도권을 넘나드는 다층적 저항을 가능하게 했다.
이 틈새 속에서 지식인·종교인·청년 활동가들이 연결되었고, 그 연결망은 1940년대의 독립운동 재점화로 이어졌다.
역사적 뿌리 — 고려·조선·삼국에서의 문화 보존
고려는 몽골 간섭기에도 향교와 사찰을 통해 자국의 역사서와 문화를 지켰고, 조선은 임진왜란·병자호란 같은 전쟁 속에서도 경서·사서의 전승에 힘썼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백제·신라가 각자 역사서를 편찬하고, 예술·문화를 통해 정체성을 강화했다.
1935년의 조선어학회·조선학운동은 이 오랜 전통의 현대적 표현이었다. 문화와 언어의 보존은 단순한 ‘지키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적극적 창조였다.
"과거를 지키는 일은 현재를 지키는 일,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1935년의 의의와 오늘의 교훈
1935년은 총칼 대신 법과 제도를 앞세운 통치 속에서도, 민족 스스로의 학문·문화·사회적 주권을 유지하려 한 해였다. 이러한 노력은 해방 이후 한국의 교육·문화·학술 발전의 기초가 되었고, 민주사회에서의 자율 공간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고유한 문화와 언어를 지키며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35년처럼 보이지 않는 저항과 지속적 축적이 있었다.
시간순 도표: 1935년 전후 주요 사건
연월 | 사건 | 핵심 내용 |
---|---|---|
1931.09 | 만주사변 | 일본의 만주 침략, 동북아 정세 격변 |
1932~1934 | 국내 사회운동 탄압 | 치안유지법 적용 확대, 주요 사회운동가 체포 |
1935 상반기 | 조선어학회 『조선어 사전』 편찬 착수 | 언어·문화 보존을 위한 대규모 민간 학술 사업 |
1935 중반 | 조선학운동 확산 | 정인보·안재홍 등 민족문화·역사 재조명 |
1935 하반기 | 농민·노동조합 활동 | 경제적 권리 주장, 지방 자치 활동 전개 |
1936.08 | 베를린 올림픽 손기정 금메달 |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민족의 존재감 각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