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숨겨진 리더십
치계의 허통 사건과 탕평 인사의 결정
조선 제4대 왕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 과학기술의 발전, 국방 강화, 농업 진흥 등 수많은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으로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닌 섬세한 리더십과 포용정신은 그저 위대한 성군이라는 이미지에 가려 상대적으로 조명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이야기는 그중 하나인 **‘치계의 허통 사건’**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정치적 에피소드입니다. 이 사건은 세종대왕이 얼마나 공정한 인사 정책과 정치적 중립을 중시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1. 사건의 배경 – 조선 초기 당파의 씨앗
조선 초기는 고려의 유산과 조선의 개혁이 충돌하던 시기였습니다.
태종 이방원의 강력한 왕권 강화 이후, 세종은 비교적 온건한 통치를 시도하며 학문과 정치의 균형을 맞추려 했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소론적 성격의 온건 학파와 훈구파 중심의 실무 관료 그룹 사이에 미묘한 긴장이 존재했습니다.
이들 사이의 갈등은 아직 뚜렷한 당파로 나뉘지는 않았지만, 인재 등용과 정책 결정에서 의견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2. 치계(馳啓)의 허통 사건이란?
‘치계’란 하급 관리가 임금에게 긴급히 글을 올리는 방법입니다.
당시, 영남 지방의 어떤 유생이 치계를 통해 “서울의 인재 선발이 편중되었다”며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서울과 중부 출신 인사들만이 중앙 관직에 오르고, 지방 출신은 실력이 있어도 기회를 얻기 어렵다고 호소했습니다.
이 글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도전이었습니다.
중앙의 지배 질서에 지방 인재가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대신들은 “이런 글은 형벌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세종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3. 세종의 반응 – 포용과 개혁
세종은 치계의 내용이 단지 개인의 불만이 아닌 제도의 결함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렇게 말합니다.
“임금이 귀 기울여야 할 말은 항상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만의 말이 아니다.
백성의 소리에 진실이 담겨 있다면, 그 누구의 글이든 경청해야 한다.”
그는 치계의 내용을 기초로 관료 선발 제도의 지역 안배를 재검토하도록 지시했고,
국가 시험에서 지역 출신들의 합격률을 점검하게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방 출신 유생들에 대한 차별적인 시험 배정과 교육 자원의 불균형이 드러났습니다.
4. 실질적 조치 – 혜택보다 공정함을 선택하다
세종은 이 사건을 계기로 지방 유생들을 위한 교육 확대를 추진했습니다.
- 각 도에 향교 정비와 교육 지원 확대 명령
- 중앙 시험 응시를 위한 여비 제공 및 응시 기회 확대
- 과거 시험의 문제 배분에서 지역 관련 문제를 출제해 기회 균등화 시도
또한, 치계를 올린 유생에게는 어떤 징계도 내리지 않고,
오히려 그의 행동을 **“나라를 위한 충언”**으로 칭찬했습니다.
이는 당시 왕권 체제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결정이었으며,
세종의 포용정신과 인사 정의 실현 의지를 강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5. 왜 중요한가? – 탕평과 인재 중심의 리더십
세종대왕의 이 같은 결정은 단순히 한 유생의 억울함을 해소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출신과 배경보다 실력과 신의를 우선하는 리더십을 실천한 사건이었습니다.
지역 갈등 해결 | 지방 유생의 불만을 제도 개편으로 수용 |
포용의 정치 | 비판을 처벌하지 않고 수용 |
교육 평등 | 향교 및 교육 자원 지방 확대 |
실력 중심 | 학연보다 실력을 중심으로 인재 등용 |
이 사건 이후 조선은 **향촌 사족(양반)**들의 교육 열기가 고조되었고,
이는 후일 사림의 등장과 성리학 기반 지방 지식인의 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6. 이 에피소드가 주는 현대적 의미
오늘날 공정성과 지역 균형, 교육 기회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핵심 이슈입니다.
세종대왕이 치계의 허통 사건에서 보여준 태도는 지도자가 어떤 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훌륭한 본보기입니다.
그는 민감한 문제를 정치적으로 회피하거나 묵살하지 않았으며,
‘사소한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현대 정치나 행정의 지도자들이 배워야 할 자세가 아닐까요?
마무리 – 세종대왕의 진짜 위대함은 어디에 있었을까?
우리는 흔히 세종대왕을 ‘한글을 창제한 성군’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의 위대함은 백성을 향한 진심 어린 애정과 포용적 정치 철학,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열어주고자 했던 리더십에서 출발합니다.
치계의 허통 사건은 이런 세종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숨겨진 역사입니다.
이 이야기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그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